설날의 의미
설은 한 해의 시작인 음력 1월 1일을 말하고 우리 나라에서는 추석과 함께 2대 명절로 꼽는 날이다. 이날을 지칭하는 단어로는 설날·원단·구정 외에도 많은 명칭이 있다. 새해 첫 달의 첫날이 설이다. 옛날에는 한 해의 첫 명절인 설날부터 정월 대보름까지가 민족 최대의 명절 기간이었다. 정월 대보름은 첫 보름이라 중시한 것 같다. 옛 문헌의 기록에도 이 기간에 즐기는 세시풍속도 많았다. 아마도 이때는 농한기이기도 하고 한 해를 시작하면서 남은 1년의 복을 비는 의미가 있었기 때문에 긴 기간 동안 명절 기간을 즐겼지 않았나 싶다. 그러나 이제 많은 세시풍속들이 점차 사라지고 있고 심지어는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는 가정들도 차츰 줄어들고 있는 현실이다.
설은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는 첫 달의 첫 날이다. 이제 만 나이로만 통용하기로 정해지긴 했지만 우리 나라에서 통용되던 나이 한 살의 개념도 설과 관계있다. 해가 바뀌는 설을 쇠면 한 살이 된다는 셈법이다. 그래서 태어나면서 한 살이 되고 몇 월에 태어났던 다음 새해의 설을 쇨 때마드 한 살 씩 더하게 된다. 예를 들면 음력 동짓달이나 섣달에 태어나면 한 두 달 뒤에 설을 쇠면 두 살이 된다. 이런 경우 양력으로는 대개 다음 해 1월 경이 될 경우가 많아 양력으로는 같은 해에 태어나도 한 살을 더해서 나이를 말하게 된다. 이래서 ‘설’이란 단어가 변용되어 나이를 말하는 ‘살’이 되었다고 추정하기도 한다.
‘구정’도 ‘민속의 날’도 아니고 ‘설날’이다
우리는 양력 1월 1일에 새해를 맞이하면서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새해 인사를 하고 나서 한 달 남짓 후에 다시 설을 맞으면서 또 새해 인사들을 건넨다. 양력 설과 음력 설을 다 치르는 이중과세를 하는 격이다. 우리가 어릴 때는 실제 양력 설을 쇠는 집들도 많이 있었다. 음력 설을 인정하지 않았던 일제강점기의 정책을 그대로 이어받아 양력 1월 1일은 휴일로 하면서 음력 설날에는 휴일로 지정하지 않아 학교를 비롯한 관청은 정상 근무를 하였기 때문에 음력 설을 쇠기는 어려운 점이 있었다. 그래도 농촌 지역의 설 쇠는 문화는 없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관공서를 제외한 일반 사업장은 며칠 씩 휴가를 주고 귀성 버스를 마련해 주기도 하였다.
지금은 추석과 함께 3일간의 연휴에 대체 휴일까지 인정하니 격세지감이 든다. 나이든 분들 가운데 설을 구정(舊正)이라고 하는데 이는 잘못된 용어이다. 설날이라는 우리 명절 이름을 찾기까지 참으로 많은 시간과 노력이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제는 당당히 우리의 전통적인 명칭인 설날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1895년 을미개혁 후 고종은 김홍집의 의견을 받아들여 1896년 1월 1일부터 태양력을 사용하게 되었다. 그래도 설날의 전통은 그대로 이어졌는데 일제강점기 때에는 일본이 우리나라의 전통문화를 말살시키기 위한 정책을 시행해 설날같은 우리명절을 억압하고 일본의 명절과 행사를 강요하였다.
당시 일본인들이 쇠던 양력 설은 광복 후에도 계속 이어지자 정부의 공식적인 행사는 양력 설을 인정하였지만 민간에서는 전통 설을 명절로 쇠는 이중과세가 나타나게 되었다. 정부는 계속 외국과의 관계와 이중과세의 낭비성을 들어 신정을 권장하면서도 추석은 휴일로 삼는 모순적인 정책이 나오기도 하였다.
설날을 되찾기까지
설날의 공휴일 문제가 몇 번 논의되다가 결국 1985년 ‘민속의 날’이라는 명칭으로 국가 공휴일로 정하기는 하였다. 정부로서도 그간의 논리를 뒤집어야 하는 곤란한 입장이긴 하지만 민속의 날이라고 한 것은 어색한 변명에 불과한 말이었다. 이때에도 민속의 날이라는 말보다 구정이라는 말이 더 일반화되기도 한 것인데 전통적인 우리의 설이 오히려 주변적인 위치로 전락하는 느낌을 주게 된다.
그러다가 1989년 음력 정월 초하루부터 본명인 ‘설날’이라고 하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민속의 날’, ‘구정’이라는 말이 일반화되어 있다. 그것은 일제강점기 때 빼앗겼던 설날의 이름을 되찾는 정책을 펴면서 민속의 날이라는 용어로 첫 걸음을 잘못 디뎠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지금은 많이 고쳐졌지만 일제로부터 벗어난 이후에도 몇십 년 동안 일상생활에서 일본말을 계속 썼던 것을 보면 한번 잘못된 것을 고치는 데에는 많은 시간과 수고가 들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제는 설날을 찾은 것이 30여 년이 넘었으니 구정이니 민속의 날이니 하는 말은 쓰지 않고 당당하게 ‘설’이라는 우리 말을 제대로 찾았으면 한다.
설날을 휴일로 하기 전에는 양력 1월 1일을 신정이라 하여 3일 연휴로 하던 것을 2일로 줄이고 1999년부터는 하루로 단축하면서 우리 설날의 위상을 다시 찾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우리 같이 나이든 이들은 어릴 때부터 양력 1월 1일부터 3일간의 연휴에 익숙하다가 하루의 휴일로 줄어드니 어색하고 아쉬움이 있으리라 생각된다.
이런 정책적인 뒷받침으로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귀성하여 차례를 지내고 일가 친척들게 인사를 다니고 성묘도 하는 세시풍속이 많이 살아나고 있지만 설날 차례를 지낸 후 저녁에는 친척들이 모여 윷놀이 등의 민속놀이를 하는 세시풍속들은 사라지고 있어 안타까움을 더한다. 그래도 관공서를 비롯한 여러 기관들이 사회적으로 실시하는 민속놀이들이 행해지고 있어 그 명맥을 유지해 가는 것은 바람직하게 보인다.
새해 인사
설이 명절로 공식화되고 또 세월이 흐르니 이제 전통적인 차례가 줄어들고 설날 연휴를 이용하여 국내외 여행을 하는 등 많은 변화가 있고 앞으로도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다. 새로운 설날 문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또 한편으로는 설날이 공식화되면서 양력 정월 초하루에 새해 인사를 하고 또 한 달 남짓 만에 또 새해 인사를 하는 어색함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 새해 인사와 전통적인 설날 인사를 구분해 쓰는 지혜가 필요할 것 같다.
'이런 생각 저런 상상 > 1000자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100일 글쓰기 챌린지-2일] 통영시 지원 한 달 여행하기 참가자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이 왔다 (1) | 2024.03.22 |
---|---|
[100일 글쓰기 챌린지-1일] 글쓰기 챌린지 100일을 시작하면서 (0) | 2024.03.21 |
[1000자 칼럼]영어로 번역된 블로그 기사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2) | 2023.06.06 |
[1000자 칼럼]오늘 아침 현관 앞에 신문이 없다 (0) | 2023.06.02 |
[1000자 칼럼]조성기 작가의 '1980년 5월 24일'을 읽고 (7) | 2023.05.31 |